죄수의 딜레마는 익히 알려져 있는 논쟁거리이고 뫼비우스의 띠 처럼 끝이 없는
무한(?) 사고를 요구한다.
죄수의 딜레마의 시발은 나에 이익이 우선인가 (내가 참여한)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우선인가에서 시작된다.
협약(?)을 깨면 나에게는 협약을 지킬때 보다 더 큰 이익이 발생되고,
협약을 지키면 나에 이익은 적지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은 유지된다.
즉 누구의 이익을 우선 하냐에 따라 협약은 지킬 것이냐 지키지 말 것이냐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계속되는 협약 파기의 위협(?)으로 부터 협약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두가지 옵션(?)이 전제된다.
협약을 지키면 상을 주고,
협약을 지키지 안으면 협약을 깨서 얻는 이익 보다 더 큰 보복(?)을 가한다.
즉 당근과 채찍이 협약 유지를 위한 두 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당근의 한계는 협약을 깼을 때의 이익 보다 언제나(?) 적다는데 있고,
이 때문에 공동체 참가자인 죄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번 이랜드·홈에버 사태 또한 죄수의 딜레마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공동체 참여자 각자로 봤을때,
사측은 비정규직을 외주 용역화 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을 줄 것으로 판단한 것이고
노측은 정규직화를 통한 고용 안정이 더 큰 이익을 줄 것이라 판단했다.
단순히 매장 점거만을 해제하고자 공권력이 투입됐다고 믿는 건 유아적 발상일 것이기에,
결과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사측의 의도대로 끝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랜드 사측은 중요한 계산 항목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거 같다.
그것은 홈에버,뉴코아 뿐만 아니라 계열사에까지 번지고 있는 소비자 불매운동이다.
외주 용역화에 따른 이익이든 고용 안정으로 인한 이익이든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소비로 인한 매출이 있어야만 이익이 발생되는데,
비정규직 보호법의 맹점을 악용하고 사회적 기대를 저버린 이랜드 측의 행태에 반기를 든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이라는 보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랜드 사측이 진행할 것으로 추정되는 외주 용역화로 인한 이익과
점거기간 동안의 영업이익 손실 그리고 소비자의 불매운동 및 회사 이미지 실추 등의 보복을
비교했을 때 과연 이랜드 사측은 보복에 버금가는 이익을 거둘 수 있을까 ?
아직은 물음표로 보인다.
영업이익 손실은 계상 가능하겠지만,
불매운동에 어느정도의 소비자들이 동참할 것이냐 그리고 불매운동이 얼마의 기간 동안
진행될 것이냐 라는 파급력이란 변수는 아직 까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 이미지 실추 회복에 어느 정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도 미지수이다.
(참고로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이트를 참고해보면 홈에버는 까르푸 인수 후 재개장 때
홈에버 홍보를 위해 2006년 10월~12월 동안 방송광고비로만 약 25억원 가량을 지출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랜드 사측이 바랐을 사태 해결의 종지부가 아닌 또다른 사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랜드 사측이 공권력 뒤에 숨어서 마냥 버티기 작전만으로 임하기엔 힘든 또다른
요인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최대 성수기 추석 명절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8월 말까지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야 할텐데 ,
공권력 투입으로까지 번진 비정규직 차별 철폐 문제가 그렇게 쉽게(?) 풀릴거라고
예단하기에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호혜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죄수의 딜레마를 다시 보자.
앞서 공동체 전체 이익을 유지하는 방법으로는 당근과 채찍이 있다고 했으나 아쉽게도 이는
죄수의 딜레마 자체를 예방하는 근본 해법이 아니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 말은 당근과 채찍만으로는 죄수의 딜레마 즉 협약 파기의 유혹을 억지할 수는 있을
지언정 협약 파기의 유혹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법은 공동체 참가자간에 신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몬테규가와 캐플릿가 간에 극한 보복(?)은 아름답도록 슬픈 희생을
댓가로 종지부를 찍고 신뢰 형성의 개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는 역으로 당근이 적어서 채찍이 덜 아파서가 아니라 서로간에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주고받기 게임 마냥 일희일비하며 무한 보복을 감행하였다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랜드 노사 양측이 서로 간에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과 그에 따른 결실을 만들어 낸다면
지금까지에 희생은 헛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서 얘기했는데,
혹시라도 참가자 누구 하나라도 공동체 전체의 이익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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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 회사 양쪽 중 어느 하나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면, 적어도 그렇게 주장하는 쪽은 확실하게 배신하겠죠. 배신하는쪽이 더 이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걸 그냥 보고 있을 다른 한쪽이 아니므로 결과는 최악으로 갑니다.
안녕하세요. snowall님.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서로 공유해야만 최악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사측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거 같이 느껴져서 걱정입니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경우가 최대 이익이 되도록 "환경"과 "인식"이 조성되어야겠죠. 본문에서 말씀하신 당근과 채찍 얘기인데, 사실 어느 한쪽이 피해를 보면서 일방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경우에는 어느 한쪽이 배신하고 어느 한쪽이 협력하는 관계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결국 둘 다 배신을 선택해서 최악의 경우가 된 것이겠죠.